1. 배경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데살로니가전서)에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니 깨어 근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살전 5:1~6). 마침 교회가 전보다 더 큰 박해를 당함에 따라 성도들은 주의 날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였다. 게다가 사도 바울이 보냈다고 하는 가짜편지와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 내 많은 성도들은 주의 날이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고 동요하게 된다(살 후 2:2). 그 중에는 주의 날이 임했으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는데(살후 3:11), 이것은 결국 교회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했다. 이에 바울은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바로 가르쳐주며, 성도들로 하여금 올바른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해 본 서신을 쓰게 된다.


2. 구조


① 핍박받는 성도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 (1장), ② 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훈(2장), ③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에 대한 권면(3장) 등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핍박받는 성도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 (1장)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성장과 사랑의 풍성함에 대하여 감사하고(3절), 또한 박해와 환난에서의 인내와 믿음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여긴다(4절). 곧이어 그는 핍박당하는 성도들을 격려한다. 즉 그는 환난을 주는 자들은 결국 환난을 받을 것이고, 환난을 견디는자들은 안식을 얻게 될 것을 말한다(6~9절).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실 때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그분의 모습을 뵙고 감격하여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인데,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그때에동참하는 자가 되기 위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기도한다고 밝힘으로써 그들을 격려한다(1:11~12).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훈(2장)

 종말에 관해 현혹시킨 자들로 인해 교회가 혼란에 빠지자 바울은 주의 재림 전에 나타날 사건을 순서에 따라 설명한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시지만 오시기에 앞서서 징조가 있음을 말한다. 먼저 전 세계적으로 배도하는 일이 나타날 것이고(3절), 그 후에 스스로 하나님이라 칭하는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3~4절). 하지만 불법의 사람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해 그 활동이 억제되며, 마침내 주의 강림 때 폐하게 될 것이다(5~8절). 그런 후 바울은 성도들을 택하사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이 가르침을 받은 대로 전통을 지키며 굳은 신앙으로 무장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13~17).

3)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에 대한 권면(3장)

 당시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거짓교사들의 유언비어(2:2)에 미혹되어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 나타났다(11절). 이에 자신이 그들에게 보여준 삶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을 본 받으라고 권면한다(7~9절). 또한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는데(10절), 이것은 주님을 기다린다는 구실로 생업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되(3:12), 무위도식하는 자들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할 것(3:13)을 권면하고 있다. 또한 가르침에 순종치 않는 자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게 하지만 원수같이 대하지 말고 형제처럼 대하라고 권면한다(14~15절). 마지막으로 바울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문안과 축도로 서신을 마친다(16~18절).

3. 적용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징조(전쟁, 자연 재해 등)가 점점 현실로 이루어져가고 있다. 실로 우리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적같이 임하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중단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믿음과 사랑과 소망 가운데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반응형

'03. 성경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고보서 - 이해하기  (0) 2022.10.23
전도서 - 이해하기  (0) 2022.09.17
데살로니가전서 - 이해하기  (0) 2022.07.02
골로새서(Colossians) - 이해하기  (0) 2022.06.13
빌립보서(Phillippians)-이해하기  (0) 2022.05.27

1. 배경

 빌립보는 마게도냐에 위치한 도시로서 본래의 이름은 크레니데스(Krenides)다. 주전 36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2세가 이곳을 정복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이다. 주전 42년 이후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데살로니가와 함께 마게도냐의 중심도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곳은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특히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주요 군사도로인 이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이곳은 상업적으로 번창한 도시였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선교전략상 복음이 아시아(동)에서 유럽(서)으로 파급되기에 적합한 복음의 전진 기지였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복음이 증거됨으로써 마게도냐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으며, 바로 그 유명한 빌립보 교회인데(사도행전 16:12~40), 유럽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기도 하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하여 처음으로 믿게 된 사람은 두아디라성 출신 자주 장사(자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라는 여성과 그의 가족이었다. 빌립보 교회는 그녀의 가정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행 16:14~15), 점치는 귀신들렸다가 온전해진 여종과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가족 등 점차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행16장). 빌립보는 당시에 로마의 퇴역장교들이 이주해서 사는 로마의 식민도시로서 로마의 축소판이었는데, 로마시민의 자부심과 특권이 그대로 발휘되는 곳이었다.  바울은 이런 정치적인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서 복음을 전했고(행 16:37~39), 빌립보서에서도 시민권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빌1:27, 3:20).

 한편 빌립보는 시민의 대다수가 로마인과 헬라인이었으며, 유대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곳에는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고 따라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대인의 방해도 없었다. 즉 빌립보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여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빌립보 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변함없이 물질적으로 바울의 선교활동을 도우므로 바울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4:15~16). 특히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줌으로써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사도바울은 이에 빌립보 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에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유오디아와 순두게, 4:2)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도 듣게 된다. 이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권면하기 위해 본서를 쓰게 된다.


2. 내용

1장  인사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간구하다 바울의 매임과 복음전파

2장  그리스도의 겸손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3장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4장  권면  빌립보 사람들의 선물 끝인사

1) 빌립보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마음"  - 1장

 바울은 다른 서신들 처럼 문안(1:1-2)을 한 다음 빌립보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와 간구를 한다(1:8~11).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참지식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바라며, 자신의 매여있는 상태 곧 감옥에갇힌 상태에 대해 언급하고, 그러한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사실에 대해 기쁨을 표현한다(1:12~26). 또한, 바울은 고난과 시련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그리스도의 존귀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전도사역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현재의 반대와 장차 있을 고난과 박해에 직면해서도 굳건히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한다(1:27~30).

2)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함 - 2장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겸손한 태도를 가질 것을(2:1-4),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에 대해(2:5~11) 즉 그리스도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신 것은 그가 신성을 박탈당하신 것이 아니라, 성육신 이전의 영광을 보류하고 자발적으로 고유의 품성(예컨대, 전지, 전능)을 억제하신 것이므로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이러한 그리스도의 품성(겸손)을 그들 자신의 삶에 적용하라고 요구하며(2:12~18),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의 사역과 그들의 희생의 예를 들었다(2:19~30).

3) "그리스도의 지식"을 가지라는 바울의 호소 - 3장

 바울은 여기에서 편지를 끝맺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그러나 그는 계속되는 율법문제에 대해 경고하기 시작한다(3:1~9).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에 정통했었다는 사실을 자서전적으로 상세히 밝힘으로써 율법에 얽매이는 것을 반박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비교할 때 다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참된 의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 율법에 기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바울은 약속하신 부활한 몸을 입기를 갈망한다(3:10~21).

4)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라는 바울의 호소 - 4장

 바울은 일련의 권면을 통해 빌립보 사람들에게 같은 마음을 품고 기도로 의지하여 분별 된 삶과 형제들과의 화목을 촉구한다(4:1~3). 그리고 4:49에서는 하나님과 화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또한 그들의 선물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자신은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어려운 환경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며(4:10~20), 오히려 감옥에서 보낸 이 기쁨의 편지는 인사와 축복으로 끝을 맺는다(4:21~23).


3. 메시지

 로마 감옥에 갇혀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바울이 어려운 박해 속에 있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서신이다. 따라서 바울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바울은 본서를 통하여 빌립보 성도들에게 고난 중에서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을 자신에게서 배울 것을 권면한다(4:9). 사도 바울은 도대체 이러한 믿음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을까? 그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고 배우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이시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비워서 사람이 되셨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채로 남겨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셔서 만물의 주권자가 되게 하셨다(2:6~11).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낮아짐으로써 오히려 높아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뻐했다. 또한 그는 그의 인생이 그러한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었다(3:21).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고난 중에서도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적용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하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비결로 세가지 마음 자세를 강조하였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겸손의 자세를(2:3), 하나님에 대해서는 경외의 마음을(2:12), 그리고 나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자기부정의 태도(3:7)를 가질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분명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통해 하늘 상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복이 우리의 삶에 넘치기를 소망한다.



반응형

1. 배 경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 고린도 교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바울의 사도 직분을 부인하면서 교회가 시끄러워진 것이다.  바울은 이 소식을 디모데에게서 전해 듣고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어 교회를 안정시키고 또 예루살렘에 보내기로 한 헌금도 처리하게 하려고 하였다. 일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궁금하게 디도를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하여 더욱 근심하게 되었다.  마침내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갔으며, 마게도냐 지방에 이르러서야 반갑게 디도를 만날 수가 있었다. 거기서 바울이 디도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은 고린도 교인들이 거의 다 바울의 말씀을 잘 받아들였다는 기쁜소식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거짓 선지자들이 방해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에 바울은 말씀을 잘 받아들인 교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하기를 원했다. 또한 자신이 사도의 직분을 어떻게 귀하게 지켰으며 어떻게 모든 어려움을 감당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눈물로 본서신을 썼다.


2. 내 용

 ①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설명(1~7장),  ②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대한 권고(8~9장),  ③ 사도권에 대한 바울 자신의 변증(10~13장) 등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설명 (1~7장)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아가야의 모든 성도들에 대해 문안인사를 한 후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 다음 그는 자신과 고린도교회 교인들 사이에 발생한 오해를 해명한다. 본래 바울의 계획은 고린도에 갔다가 마게도냐를 거쳐서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예정이었다(1:15~16).

 그러나 이 계획이 변경됨으로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진실치 못하다고 비난하였으며, 사도직까지 불신하였다. 이에 바울은 자신의 여행계획이 변경된 이유를 설명한다. 즉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적대시 한 자들을 직접 만나서 혹독하게 대하면 상처를 받을까봐 고린도 교회의 방문을 연기하고 대신에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명한다(1:12~2:4). 또한 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교회를 근심에 빠지게 한 바울의 적대자들을 오히려 사랑으로 대하라고 권면한다(2:5~11).특히 바울은 3장에서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임을 강조한다. 즉 바울은 우선 자신이 사도들의 추천서를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자들을 향해 바울의 전도의 열매인 고린도교회 교인들 자체가 자신의 사도권을 입증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추천서임을 밝힌다(3:1~3). 또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친히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세우신 것과 복음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자신의 직분(새 언약의 직분)이 구약시대 율법을 맡은 모세의 직분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임을 강조한다(3:4~18).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안다. 하지만 그 속에 보배가 있기 때문에 핍박이나 우겨싸임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4장).

 특히 그는 비록 육신은 썩어져 사라진다 하더라도 하늘의 장막, 즉 영광스러운 부활체를 덧입을 것을 사모하면서 고난 중에도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5:1~10).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자신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를 통해 주어진 새 창조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한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요,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시켜야 할 화해의 직책을 받았기 때문이다(5:16~20).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오해를 시정하고, 넓은 마음으로 용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화해에 대한 이러한 바울의 권고가 자칫 복음을 거역하는 불신자들과의 동화를 부추기는 말로 받아들여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구별된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6장). 이어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전하면서 마음 문을 열고 자신을 영접할 것을 다시 요청한다(7:2~4). 또한 편지를 통해서 그들이 회개함에 이르게 된 것을 기뻐한다고 고백한다(7:8~9).


2)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대한  권고 (8~9장)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형제들을 위한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의 자발적이고 풍성한 연보의 예를 들면서(8:1~5), 고린도 교인들이 적극 동참함으로 그들의 약속을 지킬 것을 호소한다(8:6~15).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디도와 한 동역자를 소개하며 추천한다(8:16~24). 무엇보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에게 고린도교회의 모범을 소개하여 그들이 구제사업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고 말하면서 고린도교회의 모범을 자랑한 것이 헛되어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고 복 주신다는 헌금의 원리를 이야기하면서 자발적이고 준비된 연보를 할 것을 격려한다(9:5~15).


3) 사도권에  대한 바울 자신의  변증 (10~13장)

 본 단락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로 침투한 자들이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전하며, 또한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아주 격렬한 어조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한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을 끊임없이 헐뜯었다. 첫째, 그들은 바울이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고 비방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결코 육신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행한 것임을 변호한다(10:1~6). 둘째, 그들은 바울의 외모는 볼품이 없으며(10:7), 편지로 쓸 때는 권위를 내세우지만 대면하여 말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비난하면서(10:10),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장점을 자랑했다(10:12). 이에 바울은 주님께서 주신 사도직을 자랑하면서 오직 주안에서 자랑해야 한다고 말한다(10:17). 셋째, 적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자비량 선교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공격한다(11:7, 11). 이에 바울은 자신이 사례를 받지 않은 것은 오직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적들의 공격에 맞서서 바울은 진정한 사도의 기준을 밝힌다. 그것은 아름다운 외모, 훌륭한 말솜씨, 많은 사례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자기를 희생하고 고난을 기꺼이 받았느냐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받아야 했던 수많은 고난의 목록을 부득이한 자랑으로 제시함(11:23~27)으로써 적들의 비방을 견제한다.

 한편 그는 자신이 셋째 하늘에 올라간 영적인 신비한 체험(12:1~6)을 말해야 했는데, 그것은 적들이 바울이 영적 신비체험이 없는 자라고 공격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인간적인 능력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 즉 '육신의 가시’ (12:7)를 자랑한다. 또한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면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죄를 범한 자들에게 단호한 처벌이 있을 것인데, 그럴 필요가 없도록 미리 회개할 것을 권고한다(12:14~13:10). 그리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기뻐할 것을 권고한 후 축도로 글을 맺는다(13:11~14).


3. 메시지

 고린도후서의 관심의 초점과 신학적 주제의 핵심은 한 마디로 ‘누가 진정한 사도인가?'하는 것이다. 이 물음을 둘러싼 바울과 그의 적들과의 논쟁이 고린도후서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러면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적들은 누구인가? 바울의 적대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출신의 사람들이었는지 잘 모른다. 다만 본서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자들로 보인다. 즉 그들은 고린도교회 출신은 아니고 교회 바깥(팔레스타인)에서 고린도교회 안으로 들어왔으며(11:4), 자신들만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도로 내세웠다(10:7, 11:5,13;12:11). 그럼으로써 그들은 바울이 사도라는 점을 부정했고(10:6, 10), 바울이 여행 계획을 실천하지 않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고, 또 헌금을 통하여 치부한 탐욕스런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그들은 말을 잘하는 재능의 소유자들이었으며(11:6),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았다(11:7,20).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했으며(12:1~6), 바울과는 다른 복음을 전했다(11:4).

 그러면 이러한 적대자들에 맞서서 바울이 제시한 진정한 사도상은 무엇인가?  바울은 적대자들의 비난에 대해서 본서신의 서두에서부터 자신을 변호하며(1:12~2:1), 자신의 사도의 직분의 본질에 관하여 설명한다(2:14~7:14). 즉 하나님에 의해서 바울에게 주어진 사도적 직분은 분명 영광스러운 것이지만(3:7~4:6), 동시에 그것은 고난을 동반한 것이기도 하다(4:7~5:10).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사도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이 예수께 결합되어 있음을 알았다. 즉 예수의 능력이 사도바울 자신에게 나타나며, 바로 그 능력 때문에 고난의 체험을 극복하게 해 주었다고 고백한다(4:7~12, 6:4~10, 11:23~29).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바울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나셔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2:16~17, 3:5~6)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이다(5:11~21). 사도의 직분은 사람들에게 이 화해의 사건을 전파하고, 이 화해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5:19~21). 한편 하나님의 은혜가 사도와 교회의 현실적인 삶을 결정한다. 사도는 그의 교회를 위하여 살며(5:13, 11:28~29), 그 교회를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로 안내하기를 원한다(11:2).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사도상이다. 바울이 말한 진정한 사도상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화해사건을 말씀으로 선포하는 사람이며, 어느 경우에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온갖 박해와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면에서 바울이야말로 진정한 사도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라고 하겠다.

 



4. 적용

 오늘날 사도의 직함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의 사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의 복음을 전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께로 돌아와 주님을 경배하는 영광의 날,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많을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반응형



말씀선포 ㅣ 행9장 10~20절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9: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9: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10 In Damascus there was a disciple named Ananias. The Lord called to him in a vision, "Ananias!" "Yes, Lord," he answered.


9:11 The Lord told him, "Go to the house of Judas on Straight Street and ask for a man from Tarsus named Saul, for he is praying.


9:12 In a vision he has seen a man named Ananias come and place his hands on him to restore his sight."


9:13 "Lord," Ananias answered, "I have heard many reports about this man and all the harm he has done to your saints in Jerusalem.


9:14 And he has come here with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s to arrest all who call on your name."


9:15 But the Lord said to Ananias, "Go! This man is my chosen instrument to carry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their kings and before the people of Israel.


9:16 I will show him how much he must suffer for my name."


9:17 Then Ananias went to the house and entered it. Placing his hands on Saul, he said, "Brother Saul, the Lord--Jesus, who appeared to you on the road as you were coming here--has sent me so that you may see again and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9:18 Immediately, something like scales fell from Saul's eyes, and he could see again. He got up and was baptized,


9:19 and after taking some food, he regained his strength. Saul spent several days with the disciples in Damascus.


9:20 At once he began to preach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반응형

'01.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12.30 - 거룩한 예배자가 되라  (0) 2018.12.31
2018.12.25 - 사랑의 징표와 장소  (0) 2018.12.25
2018.12.16 - 양과 염소  (0) 2018.12.16
2018.12.09 - 네가지 마음밭  (0) 2018.12.09
2018.12.02 - 선한목자  (0) 2018.12.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