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데살로니가전서)에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니 깨어 근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살전 5:1~6). 마침 교회가 전보다 더 큰 박해를 당함에 따라 성도들은 주의 날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였다. 게다가 사도 바울이 보냈다고 하는 가짜편지와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 내 많은 성도들은 주의 날이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고 동요하게 된다(살 후 2:2). 그 중에는 주의 날이 임했으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는데(살후 3:11), 이것은 결국 교회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했다. 이에 바울은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바로 가르쳐주며, 성도들로 하여금 올바른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해 본 서신을 쓰게 된다.


2. 구조


① 핍박받는 성도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 (1장), ② 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훈(2장), ③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에 대한 권면(3장) 등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핍박받는 성도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 (1장)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성장과 사랑의 풍성함에 대하여 감사하고(3절), 또한 박해와 환난에서의 인내와 믿음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여긴다(4절). 곧이어 그는 핍박당하는 성도들을 격려한다. 즉 그는 환난을 주는 자들은 결국 환난을 받을 것이고, 환난을 견디는자들은 안식을 얻게 될 것을 말한다(6~9절).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실 때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그분의 모습을 뵙고 감격하여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인데,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그때에동참하는 자가 되기 위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기도한다고 밝힘으로써 그들을 격려한다(1:11~12).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훈(2장)

 종말에 관해 현혹시킨 자들로 인해 교회가 혼란에 빠지자 바울은 주의 재림 전에 나타날 사건을 순서에 따라 설명한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시지만 오시기에 앞서서 징조가 있음을 말한다. 먼저 전 세계적으로 배도하는 일이 나타날 것이고(3절), 그 후에 스스로 하나님이라 칭하는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3~4절). 하지만 불법의 사람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해 그 활동이 억제되며, 마침내 주의 강림 때 폐하게 될 것이다(5~8절). 그런 후 바울은 성도들을 택하사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이 가르침을 받은 대로 전통을 지키며 굳은 신앙으로 무장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13~17).

3)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에 대한 권면(3장)

 당시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거짓교사들의 유언비어(2:2)에 미혹되어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 나타났다(11절). 이에 자신이 그들에게 보여준 삶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을 본 받으라고 권면한다(7~9절). 또한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는데(10절), 이것은 주님을 기다린다는 구실로 생업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되(3:12), 무위도식하는 자들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할 것(3:13)을 권면하고 있다. 또한 가르침에 순종치 않는 자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게 하지만 원수같이 대하지 말고 형제처럼 대하라고 권면한다(14~15절). 마지막으로 바울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문안과 축도로 서신을 마친다(16~18절).

3. 적용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징조(전쟁, 자연 재해 등)가 점점 현실로 이루어져가고 있다. 실로 우리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적같이 임하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중단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믿음과 사랑과 소망 가운데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반응형

'03. 성경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고보서 - 이해하기  (0) 2022.10.23
전도서 - 이해하기  (0) 2022.09.17
데살로니가전서 - 이해하기  (0) 2022.07.02
골로새서(Colossians) - 이해하기  (0) 2022.06.13
빌립보서(Phillippians)-이해하기  (0) 2022.05.27

1. 배경

 데살로니가는 그리스의 북쪽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이며, 항구도시로서 무역의 중심지였다. 로마와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에그나티아 대로'가 통과하는 행정 · 군사 전략상의 요충지였음.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그곳에 몇 주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다(행 17:1~4). 그러나 바울이 이곳에 머무는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소란이 일어났다.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세상을 온통 소란케 한다'고 비난했다(행 17:6).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를 거쳐 아덴(아테네), 그리고 고린도로 갔다. 아덴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 그곳 사정을 알아보도록 하였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유대인들의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견고히 지키며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바울에게 전했다. 그러나 몇 가지 시정되어야 할 일들이 있음을 보고했는데,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금방 다시 오실 것처럼 생각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4:11), 또 어떤 이들은 이전에 이미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떻게 될 것인지, 그들도 다시 살아나서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여 궁금해하고 걱정한다(4:13)는 것이었다. 이에 바울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주님의 재림에 관한 사항과 재림 이전에 죽은 자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쳐 줄 필요를 느껴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


2. 구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다룬 전반부(1~3장)와 성도들의 실생활과 재림에 대한 교훈을 다룬 후반부(4~5장)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 (1~3장)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시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다. 하지만 그 즉시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급히 피신하게 된다(행 17:5~10). 그 후 바울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지로 다니면서 계속 전도하던 중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정치, 종교적 핍박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바울은 그들의 신앙에 감사한다. 또한 바울은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좋은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과 각처로 퍼져나간 것을 칭찬한다. 2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의 자신의 과거사역을 회상한다. 고난과 모욕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한 일, 그리고 어머니가 자녀를 대하듯(2:7),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2:11),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돌본 일을 언급하면서 그것은 '그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을 하게 하려는 것'(2:12)이라고 말한다. 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유대인과 동족(이방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키고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 받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면 다시 방문하고자 했으나 사단의 방해로 실현되지 못했음을 밝힌다. 사단의 방해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지 못하게 된 바울은 아직 초보적인 신앙에 머무르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핍박으로 인해 신앙을 포기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그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세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환경이 허락되지 않자 자신을 대신해서 디모데를 파송한다. 데살로니가로부터 돌아온 디모데는 성도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신앙에 굳게 선 것과 또한 바울을 보기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이에 바울은 큰 위로를 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도간의 뜨거운 사랑으로 인한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거룩함에 흠이 없기를 기도한다.

2) 성도들의 실생활과 재림에 대한 교훈(4~5장)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재림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금방 다시 오실 것처럼 생각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전에 이미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떻게 될 것인지, 그들도 다시 살아나서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여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실생활과 재림과 관련된 실제적인 권면을 한다. 먼저 그는 무엇보다도 종말을 앞둔 성도들이 성적 순결을 간직함은 물론, 형제 사랑에 더욱 힘써야 함을 강조한다(4:2~10). 또한 주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무위도식하면 안되고 성실하게 일하는 가운데 경제적으로 자립할 것을 권한다(4:11~12). 다음으로 그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변화된 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4:14~18). 한편, 불신자들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만 성도들은 빛 가운데 있으므로 도적같이 임할 수 없다. 이러므로 성도들은 깨어 근신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갖고 서로 권면하며 덕을 세우라고 부탁한다(5:1-11). 마지막으로 바울은 종말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실제적인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먼저 교회생활에 있어서 성도는 교회 지도자들을 사랑으로 존귀하게 대하고(5:12~13), 성도간에 화목하며 사랑으로 연약한 자를 붙들어 주며,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대하라고 권고한다(5:14~15).  또한 개인생활에 있어서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하며, 좋은 것은 굳게 잡고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흠이 없이 보전되기를 기원한다.


3. 메시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 핵심진리이며,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언급되고 있다(1:10, 2:19, 3:13, 4:17, 5:23). 특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4:13~18, 5:1~11에서 아주 분명하게 묘사된다. 먼저 4:13~18에서 바울은 주의 재림과 죽은 성도들의 부활을 결합시킨다. 특히 4:16~17은 재림 시 일어날 사건들의 순서를 보여준다. 먼저 주님의 장엄한 재림이 있고, 그에 이어서 주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이 있으며, 그 후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려져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로 인하여 슬퍼하지 말고 서로를 위로하도록 사도 바울은 권고한다. 다음으로 5:1~11에서 사도바울은 이러한 종말사건의 방식과 시기에 관해서 말한다. 주님의 재림은 도적이 찾아오듯이 기대하지 않은 시간에 갑자기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날을 대비하며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4. 적용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 바라시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랑되신 예수님이 도적같이 갑자기 오실지라도 그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신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신부로서 추구해야 할 합당한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믿음의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살전 1:3), 이 세 가지 덕목을 추구하는 가운데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살전 3:13).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삶을 추구할 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게 될 것이다. 


반응형

1. 배경

 골로새는 소아시아의 중앙부에 있는 내륙의 도시로서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170km쯤 떨어져 있는 브루기아(Phrygia) 지방의 남쪽 성읍,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 부근에 위치한 상업도시이다.

골로새는 인근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와 라오디게아에 비하면 작은 도시이다.  골로새는 동방의 종교와 상품이 로마로 운송되는 무역로에 위치함으로, 많은 상인들과 여행객의 출입이 잦았다. 바울 당시에 골로새의 주민들은 여러 종족들이 혼합된 상태에 있었다. 브루기아에 일찍이 이주한 헬라인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대인들도 상당수가 그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골로새 교회는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로서 바울의 사랑과 영향력 가운데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이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골로새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형식주의와 헬라인의 철학과 동양에서 들어온 종교의 영향으로 거짓 교사들이 등장하여 거짓 교훈(이단사상)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거짓 교사들의 이단사상은 구원론에 나타났다. 그들은 예수는 사람이었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구원 대신에 영적인 중보자로서 천사적 존재와 어떤 철학적 지혜와 육체를 제어하는 금욕적 규율에 의하여 구원이 얻어질 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즉 골로새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여러 축제일과 절기 및 안식일을 준수할 것을 강조했으며(2:16), 음식에 대한 규정과 율법적 관습을 지킬 것을 강요하면서(2:16, 21) 겸손과 천사숭배를 권장하였다(2:18). 요컨대 그들은 유대주의와 영지주의 사상을 결합시킨 특이한 이단사상으로 골로새 교인들을 미혹하려고 했던 것이다. 골로새 교회를 지켜오던 에바브라는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될지 몰라서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문의하게 된다. 이에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이단사상을 반박하고, 그리스도인의 실천적인 삶을 위한 참된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 옥중서신을 쓰게 되었다.

2. 내용

 참된 구원의 진리를 설명하는 교리부분(1~2장)과 구원받은 자의 새로운 삶을 강조하는 윤리부분(3~4장)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교리부분(1~2장) : 참된 구원의 진리

 바울은 먼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참된 신앙을 위협하는 거짓 교사들의 이단사상에 대응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하여 기록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고, 섭리(보존과 통치)되며, 그는 만물보다 먼저 영원한 때부터 계신다(1:16~17).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다(1:18, 24).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한 영광의 소망이시다(1:27). 즉,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과 천상적인 모든 존재들의 근원과 머리가 되시며, 모든 피조물과 인류를 위하여 평화를 가져오신 분이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영적인 세력에 대하여 승리하시고 온 우주의 지배자가 되셨다(1:18~20). 그분 안에는 신성의 완전함과 구원과 지혜와 지식의 완전함이 있다(2:2~3). 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고, 예배하는 것 외의 다른 어떠한 종교적 실천, 즉 천사숭배나 특정한 절기를 지키는 것이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행위는 사람의 유전이요,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현혹시킬 뿐, 무익하고 헛된 것이고, 가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적 행위나 천사숭배와 세상적인 철학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바로 설 것을 당부하고 있다.

2) 윤리부분(3~4장) : 구원받은 자의 새로운 삶

 이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새 사람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바울은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구체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즉 거룩과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서의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3:1~17). 그리고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바울은 아내와 남편(3:18~3:19), 자녀와 부모(3:20~21), 종과 주인(3:22~4:1)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도 변화된 삶을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즉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또한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비들은 자녀들을 격노케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종들은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상전들은 자신의 상전이 하늘에 있음을 명심하고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한다. 한편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와 언어생활에 대해서도 교훈을 준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며, 주의 종들을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며, 외인을 향해서는 세월을 아끼어 지혜로 행할 것과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해야 한다고 권면한다(4:2~6).


3. 적용

 우리는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따라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짓 교훈을 철저히 배격하고, 구원받은 새사람으로써 철저하게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세상과 단절된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반응형

1. 배경

 빌립보는 마게도냐에 위치한 도시로서 본래의 이름은 크레니데스(Krenides)다. 주전 36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2세가 이곳을 정복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이다. 주전 42년 이후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데살로니가와 함께 마게도냐의 중심도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곳은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특히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주요 군사도로인 이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이곳은 상업적으로 번창한 도시였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선교전략상 복음이 아시아(동)에서 유럽(서)으로 파급되기에 적합한 복음의 전진 기지였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복음이 증거됨으로써 마게도냐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으며, 바로 그 유명한 빌립보 교회인데(사도행전 16:12~40), 유럽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기도 하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하여 처음으로 믿게 된 사람은 두아디라성 출신 자주 장사(자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라는 여성과 그의 가족이었다. 빌립보 교회는 그녀의 가정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행 16:14~15), 점치는 귀신들렸다가 온전해진 여종과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가족 등 점차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행16장). 빌립보는 당시에 로마의 퇴역장교들이 이주해서 사는 로마의 식민도시로서 로마의 축소판이었는데, 로마시민의 자부심과 특권이 그대로 발휘되는 곳이었다.  바울은 이런 정치적인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서 복음을 전했고(행 16:37~39), 빌립보서에서도 시민권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빌1:27, 3:20).

 한편 빌립보는 시민의 대다수가 로마인과 헬라인이었으며, 유대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곳에는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고 따라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대인의 방해도 없었다. 즉 빌립보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여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빌립보 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변함없이 물질적으로 바울의 선교활동을 도우므로 바울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4:15~16). 특히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줌으로써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사도바울은 이에 빌립보 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에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유오디아와 순두게, 4:2)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도 듣게 된다. 이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권면하기 위해 본서를 쓰게 된다.


2. 내용

1장  인사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간구하다 바울의 매임과 복음전파

2장  그리스도의 겸손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3장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4장  권면  빌립보 사람들의 선물 끝인사

1) 빌립보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마음"  - 1장

 바울은 다른 서신들 처럼 문안(1:1-2)을 한 다음 빌립보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와 간구를 한다(1:8~11).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참지식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바라며, 자신의 매여있는 상태 곧 감옥에갇힌 상태에 대해 언급하고, 그러한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사실에 대해 기쁨을 표현한다(1:12~26). 또한, 바울은 고난과 시련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그리스도의 존귀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전도사역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현재의 반대와 장차 있을 고난과 박해에 직면해서도 굳건히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한다(1:27~30).

2)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함 - 2장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겸손한 태도를 가질 것을(2:1-4),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에 대해(2:5~11) 즉 그리스도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신 것은 그가 신성을 박탈당하신 것이 아니라, 성육신 이전의 영광을 보류하고 자발적으로 고유의 품성(예컨대, 전지, 전능)을 억제하신 것이므로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이러한 그리스도의 품성(겸손)을 그들 자신의 삶에 적용하라고 요구하며(2:12~18),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의 사역과 그들의 희생의 예를 들었다(2:19~30).

3) "그리스도의 지식"을 가지라는 바울의 호소 - 3장

 바울은 여기에서 편지를 끝맺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그러나 그는 계속되는 율법문제에 대해 경고하기 시작한다(3:1~9).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에 정통했었다는 사실을 자서전적으로 상세히 밝힘으로써 율법에 얽매이는 것을 반박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비교할 때 다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참된 의는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 율법에 기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바울은 약속하신 부활한 몸을 입기를 갈망한다(3:10~21).

4)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라는 바울의 호소 - 4장

 바울은 일련의 권면을 통해 빌립보 사람들에게 같은 마음을 품고 기도로 의지하여 분별 된 삶과 형제들과의 화목을 촉구한다(4:1~3). 그리고 4:49에서는 하나님과 화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또한 그들의 선물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자신은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어려운 환경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며(4:10~20), 오히려 감옥에서 보낸 이 기쁨의 편지는 인사와 축복으로 끝을 맺는다(4:21~23).


3. 메시지

 로마 감옥에 갇혀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바울이 어려운 박해 속에 있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서신이다. 따라서 바울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바울은 본서를 통하여 빌립보 성도들에게 고난 중에서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을 자신에게서 배울 것을 권면한다(4:9). 사도 바울은 도대체 이러한 믿음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을까? 그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고 배우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이시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비워서 사람이 되셨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채로 남겨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셔서 만물의 주권자가 되게 하셨다(2:6~11).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낮아짐으로써 오히려 높아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뻐했다. 또한 그는 그의 인생이 그러한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었다(3:21).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고난 중에서도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적용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하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비결로 세가지 마음 자세를 강조하였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겸손의 자세를(2:3), 하나님에 대해서는 경외의 마음을(2:12), 그리고 나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자기부정의 태도(3:7)를 가질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분명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 또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통해 하늘 상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복이 우리의 삶에 넘치기를 소망한다.



반응형

1. 배경

 갈라디아는 소아시아 중앙지대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같은 도시가 있었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중에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조건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갈라디아 여러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이 갈라디아를 떠나고 난 얼마 후,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몰래 들어와 교인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완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할례와 율법 준수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은 바울의 복음과 사도직을 공격하였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아 그 복음에서 할례와 율법의 의무를 제거하고 인간들이 믿기 쉬운 복음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대주의자들의 영향으로 다수의 갈라디아 교인들은 '오직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참된 복음에서 떠나 할례와 율법 준수를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교인들 사이에 의견 차이와 갈등을 일으키고 사랑의 유대 관계를 깨뜨려 서로 물고 뜯는 긴박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확실하게 정리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을 참된 복음과 믿음 위에 서도록 권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권면의 요점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포기하고 율법 종교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구원은 율법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울은 본 서신을 쓰게 된 것이다.


2. 구조

 ① 바울의 사도권 변호(1~2장)  ② 이신칭의 복음에 대한 변증(3~4장)  ③ 복음의 윤리적 적용(5~6장)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바울의 사도권 변호 (1~2장)

 당시의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가르친 복음을 전복시키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바울의 사도권을 비방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것(1:11~24)과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임을 천명한다(2:1~10). 특히 그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는 문제에 대해 외식한 베드로를 책망한 사실을 밝히는데(2:11~21),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지닌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신칭의 복음에 대한 변증 (3~4장)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갈라디아교인들이 성령의 은혜를 입은 것이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3:2~14). 둘째, 인간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강조한다(3:15~18).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율법이 주어지기 43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인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 역할을 할 뿐이다(3:24).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은 더 이상 율법에 매여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요 상속자가 되었다(4:1~7). 따라서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원래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4.8~20). 또한 아브라함의 두 아들의 비유(4:21~31)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믿음으로 약속의 자손이 되었음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하갈을 쫓아낸 것처럼 유대주의자들을 멀리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3) 복음의 윤리적 적용 (5~6장)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율법에서 자유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 자유를 결코 육체의 기회로 삼아 또 다시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5:1, 13).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좇아 행하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가르친다(5:22~23).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서로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고 도와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실천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라고 말한다(6장).


3. 적용

 오늘날 많은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전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사실은 복음이 복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 증거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즉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믿음에다 율법적 행위나 선행이 뒤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다른 복음에 얽매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에 대한 확신과 감격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오직 이러한 다른 복음을 배격하고 바른 복음위에 서고 바른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음으로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자유인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내가 마음대로 살아가며 죄를 지어도 괜찮은 자유방임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하는 자유임을 명심하자. 우리가 이와 같이 참 복음을 전파하고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갈 때, 죄의 종노릇하는 많은 사람들이 죄로부터 해방되어 우리처럼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반응형

1. 배 경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보낸 후 고린도 교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바울의 사도 직분을 부인하면서 교회가 시끄러워진 것이다.  바울은 이 소식을 디모데에게서 전해 듣고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어 교회를 안정시키고 또 예루살렘에 보내기로 한 헌금도 처리하게 하려고 하였다. 일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궁금하게 디도를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하여 더욱 근심하게 되었다.  마침내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갔으며, 마게도냐 지방에 이르러서야 반갑게 디도를 만날 수가 있었다. 거기서 바울이 디도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은 고린도 교인들이 거의 다 바울의 말씀을 잘 받아들였다는 기쁜소식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거짓 선지자들이 방해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에 바울은 말씀을 잘 받아들인 교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하기를 원했다. 또한 자신이 사도의 직분을 어떻게 귀하게 지켰으며 어떻게 모든 어려움을 감당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눈물로 본서신을 썼다.


2. 내 용

 ①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설명(1~7장),  ②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대한 권고(8~9장),  ③ 사도권에 대한 바울 자신의 변증(10~13장) 등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설명 (1~7장)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아가야의 모든 성도들에 대해 문안인사를 한 후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 다음 그는 자신과 고린도교회 교인들 사이에 발생한 오해를 해명한다. 본래 바울의 계획은 고린도에 갔다가 마게도냐를 거쳐서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예정이었다(1:15~16).

 그러나 이 계획이 변경됨으로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진실치 못하다고 비난하였으며, 사도직까지 불신하였다. 이에 바울은 자신의 여행계획이 변경된 이유를 설명한다. 즉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적대시 한 자들을 직접 만나서 혹독하게 대하면 상처를 받을까봐 고린도 교회의 방문을 연기하고 대신에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명한다(1:12~2:4). 또한 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교회를 근심에 빠지게 한 바울의 적대자들을 오히려 사랑으로 대하라고 권면한다(2:5~11).특히 바울은 3장에서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임을 강조한다. 즉 바울은 우선 자신이 사도들의 추천서를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자들을 향해 바울의 전도의 열매인 고린도교회 교인들 자체가 자신의 사도권을 입증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추천서임을 밝힌다(3:1~3). 또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친히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세우신 것과 복음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자신의 직분(새 언약의 직분)이 구약시대 율법을 맡은 모세의 직분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임을 강조한다(3:4~18).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안다. 하지만 그 속에 보배가 있기 때문에 핍박이나 우겨싸임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4장).

 특히 그는 비록 육신은 썩어져 사라진다 하더라도 하늘의 장막, 즉 영광스러운 부활체를 덧입을 것을 사모하면서 고난 중에도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5:1~10).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자신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를 통해 주어진 새 창조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한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요,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시켜야 할 화해의 직책을 받았기 때문이다(5:16~20).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오해를 시정하고, 넓은 마음으로 용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화해에 대한 이러한 바울의 권고가 자칫 복음을 거역하는 불신자들과의 동화를 부추기는 말로 받아들여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구별된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6장). 이어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전하면서 마음 문을 열고 자신을 영접할 것을 다시 요청한다(7:2~4). 또한 편지를 통해서 그들이 회개함에 이르게 된 것을 기뻐한다고 고백한다(7:8~9).


2)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대한  권고 (8~9장)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형제들을 위한 마게도냐교회 교인들의 자발적이고 풍성한 연보의 예를 들면서(8:1~5), 고린도 교인들이 적극 동참함으로 그들의 약속을 지킬 것을 호소한다(8:6~15).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디도와 한 동역자를 소개하며 추천한다(8:16~24). 무엇보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에게 고린도교회의 모범을 소개하여 그들이 구제사업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고 말하면서 고린도교회의 모범을 자랑한 것이 헛되어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고 복 주신다는 헌금의 원리를 이야기하면서 자발적이고 준비된 연보를 할 것을 격려한다(9:5~15).


3) 사도권에  대한 바울 자신의  변증 (10~13장)

 본 단락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로 침투한 자들이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전하며, 또한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아주 격렬한 어조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한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을 끊임없이 헐뜯었다. 첫째, 그들은 바울이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고 비방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결코 육신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행한 것임을 변호한다(10:1~6). 둘째, 그들은 바울의 외모는 볼품이 없으며(10:7), 편지로 쓸 때는 권위를 내세우지만 대면하여 말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비난하면서(10:10),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장점을 자랑했다(10:12). 이에 바울은 주님께서 주신 사도직을 자랑하면서 오직 주안에서 자랑해야 한다고 말한다(10:17). 셋째, 적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자비량 선교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공격한다(11:7, 11). 이에 바울은 자신이 사례를 받지 않은 것은 오직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적들의 공격에 맞서서 바울은 진정한 사도의 기준을 밝힌다. 그것은 아름다운 외모, 훌륭한 말솜씨, 많은 사례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자기를 희생하고 고난을 기꺼이 받았느냐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받아야 했던 수많은 고난의 목록을 부득이한 자랑으로 제시함(11:23~27)으로써 적들의 비방을 견제한다.

 한편 그는 자신이 셋째 하늘에 올라간 영적인 신비한 체험(12:1~6)을 말해야 했는데, 그것은 적들이 바울이 영적 신비체험이 없는 자라고 공격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인간적인 능력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 즉 '육신의 가시’ (12:7)를 자랑한다. 또한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면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죄를 범한 자들에게 단호한 처벌이 있을 것인데, 그럴 필요가 없도록 미리 회개할 것을 권고한다(12:14~13:10). 그리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기뻐할 것을 권고한 후 축도로 글을 맺는다(13:11~14).


3. 메시지

 고린도후서의 관심의 초점과 신학적 주제의 핵심은 한 마디로 ‘누가 진정한 사도인가?'하는 것이다. 이 물음을 둘러싼 바울과 그의 적들과의 논쟁이 고린도후서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러면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적들은 누구인가? 바울의 적대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출신의 사람들이었는지 잘 모른다. 다만 본서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자들로 보인다. 즉 그들은 고린도교회 출신은 아니고 교회 바깥(팔레스타인)에서 고린도교회 안으로 들어왔으며(11:4), 자신들만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도로 내세웠다(10:7, 11:5,13;12:11). 그럼으로써 그들은 바울이 사도라는 점을 부정했고(10:6, 10), 바울이 여행 계획을 실천하지 않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고, 또 헌금을 통하여 치부한 탐욕스런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그들은 말을 잘하는 재능의 소유자들이었으며(11:6),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았다(11:7,20).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했으며(12:1~6), 바울과는 다른 복음을 전했다(11:4).

 그러면 이러한 적대자들에 맞서서 바울이 제시한 진정한 사도상은 무엇인가?  바울은 적대자들의 비난에 대해서 본서신의 서두에서부터 자신을 변호하며(1:12~2:1), 자신의 사도의 직분의 본질에 관하여 설명한다(2:14~7:14). 즉 하나님에 의해서 바울에게 주어진 사도적 직분은 분명 영광스러운 것이지만(3:7~4:6), 동시에 그것은 고난을 동반한 것이기도 하다(4:7~5:10).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사도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이 예수께 결합되어 있음을 알았다. 즉 예수의 능력이 사도바울 자신에게 나타나며, 바로 그 능력 때문에 고난의 체험을 극복하게 해 주었다고 고백한다(4:7~12, 6:4~10, 11:23~29).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바울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나셔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2:16~17, 3:5~6)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이다(5:11~21). 사도의 직분은 사람들에게 이 화해의 사건을 전파하고, 이 화해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5:19~21). 한편 하나님의 은혜가 사도와 교회의 현실적인 삶을 결정한다. 사도는 그의 교회를 위하여 살며(5:13, 11:28~29), 그 교회를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로 안내하기를 원한다(11:2).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사도상이다. 바울이 말한 진정한 사도상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화해사건을 말씀으로 선포하는 사람이며, 어느 경우에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온갖 박해와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면에서 바울이야말로 진정한 사도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라고 하겠다.

 



4. 적용

 오늘날 사도의 직함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의 사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의 복음을 전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께로 돌아와 주님을 경배하는 영광의 날,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많을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반응형

1. 배경

 고린도는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지협에 위치함으로 인해 남북으로는 육로를 연결하고 동서로는 해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이러한 입지조건으로 인해 고린도는 자연히 국제적인 무역 도시로 번성하게 된다. 주전 27년부터는 로마의 총독이 부임함으로써 고린도는 그리스 남쪽 아가야 지역의 행정 수도가 되면서 로마 제국 각지로부터 다양한 민족들이 유입하게 되었으며, 바울이 그곳에 방문했을 당시에 고린도 인구는 수십만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고린도의 종교적˙도덕적 타락을 유발했고, 고린도는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도시가 되었다. 이에 하나님은 2차 선교여행 때 이곳에 온 사도바울을 1년 반 동안에 머무르게 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행 18:1~11),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다. 바울이 떠난 후에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가 와서 복음을 전하여 성황을 이룬다(행 18:24~28). 처음에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부요하고 은사가 풍성한 교회로 성장한다(고전 1:4~7). 그러나 사도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 얼마 안되어 세상의 타락이 교회 안에 침투하여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분파문제, 음행문제, 송사문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 성만찬에 관한 문제, 성령의 은사와 부활문제, 헌금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마침 이 때 사도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 있었는데, 고린도 교회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알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되었다.


2. 내용

 전반부(1~6장)는 글로에의 가족이 전해준 보고에 대한 답변으로 교회의 분파문제와 성적 타락문제, 성도간의 송사문제, 자유방임주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7~16장)는 고린도 교회에서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변으로 결혼문제, 우상제물 문제, 공중예배문제, 영적 은사문제, 부활문제, 헌금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글로에의 가족이 전해준 보고에 대한 답변 (1~6장)

(1) 교회의 분파(1~4장)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지도자들을 높이므로 분파가 생겼는데 (1:12),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단지 하나님의 종일뿐이며, 성도들의 유일한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임을 강조한다.

(2) 성적 타락(5장)

 고린도의 성적 타락이 교회까지 침투했는데, 교회는 이를 방치해서는 안되며 범죄한 자가 회개하고 죄를 버릴 때까지 그 성도를 출교시키라고 명령한다. 또한 기독교인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따라서 성적 부도덕을 범하는 것은 내재하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고 강조한다.

(3) 성도간의 송사(6:1~11)

 성도는 세상을 심판할 자로서 성도가 세상법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이에 바울은 성도간의 문제를 법정에 가지고 가기 전에 성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4) 자유방임주의(6:12~20)

 고린도의 열광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영적 인간이 되었기에 이제 더이상 육체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음행을 저지르는 극단적인 방탕에 빠졌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 성도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서 음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처사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2) 고린도 교회에서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변 (7~16장)

(1) 결혼문제(7장)

바울은 결혼은 의무는 아니며 임박한 세계 종말의 기대 속에서는 독신으로 생활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바울은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8~10장)

 믿음이 강한 성도는 우상의 제물로 쓰인 고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으나 믿음이 연약한 자가 그것을 거리낄 때는 먹지 않는 것이 사랑임을 강조한다.

(3) 공중예배규정(11장) - 여성의 두건착용과 성만찬 문제

 초대교회는 여자들이 예배드릴 때 머리에 수건을 쓰는 관례가 있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여인들이 이 관례를 깨뜨림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사도바울은 창조질서와 자연적 본성을 들어 여인들이 예배 중에 머리에 수건을 써서 교회의 관행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교훈하고 있다. 한편 초대교회의 성찬은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갖고 와서 성도간의 교제를 겸한 공동식사의 형태로 행해졌다. 그런데 빈부의 차가 심했던 고린도 교회에서는 부자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먹고 마셨다. 결국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소외시킴으로써 성찬의 의미를 더럽혔다. 이에 사도바울은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의 본래 의미를 되살려 서로 사랑으로 나눌 것을 부자들에게 촉구한다.

(4) 성령의 은사(12~14장)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받은 은사만이 최고라는 생각에 젖어 자랑과 교만을 일삼으며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에 바울은 은사 중의 으뜸은 사랑이며,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5) 죽은 자의 부활(15장)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 영혼불멸은 인정하면서도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과 성도들의 육체부활을 확증하되(15:1~34), 그리스도처럼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증거한다(15:47~49).

(6) 헌금의 문제(16장)

 바울이 헌금을 모금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물질을 통한 사랑의 교제는 예루살렘 교회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권면한다.


3. 메시지

 고린도 교회는 현대 교회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에 있는 교회는 현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거의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 시대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린도 전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교회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상교회에 보내진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저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고린도 교회에는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분파문제(1~4장), 성적 타락(5장), 세상 법정에의 소송문제(6:1~11), ‘모든 것이 가하다'는 자유방임주의(6:12~20), 결혼문제(7:1~40),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8~10장), 공중예배에 관한 문제(11장), 성령의 은사 문제(12~14장), 죽은 자들의 부활문제(15:1~58), 헌금의 문제(16:1~9)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왜 고린도 교회에는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문제들을 포함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고린도 지역이라는 세속적인 환경의 영향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결코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에 생긴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도바울은 고전 1~2장에서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고 ‘세상지혜'를 받아들인 데(복음의 변질)에 있다고 그 원인을 분명하게 밝힌다. 특별히 본서 초반부터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지혜’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전1:20-21).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십자가와 부활의 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세상지혜의 일종으로 오해하고, 이 세상지혜에 기초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거부하였다. 한 마디로 고린도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끌어들인 결과,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속화의 길로 나간 것이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본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굳게 붙잡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적용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신학' 대신 인간 중심의 ‘영광의 신학'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교회 내에서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과 섬김과 겸손으로 살기보다는 명예나 물질이나 권력에 대한 추구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성도인 우리는 모름지기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우리 마음 판에 깊이 새기며 또한 그 도를 날마다 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삶에는 핍박과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부활의 기쁨과 영광, 그리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이 될 것이다.


반응형

1. 명칭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은 ‘세페르 테힐림'이며, 그 뜻은 '찬양의 책'이라는 뜻이다. 한편 70인역에서는 ‘현악기 반주에 따라 불려지는 노래'라는 뜻의 '살모이' (Psalmoi)'라고 했는데, 여기서 시편의 영어명칭인 'Psalm’이 유래되었다. 그리고 한글성경은 '시들의 책'이란 뜻을 살려 '시편' 이라고 하였다. 시편은 모두 150개의 시들로 이루어졌으며, 5권의 독립된 책으로 엮어져 있다. 각 권의 마지막 부분(1권-41:13, 2권-72:19, 3권-89:52, 4권-106:48, 5권-150:6)은 송영(頌樂)으로 끝난다. 송영(榮)이란 예배의 시작과 끝에 하나님의 영광을 짧게 강조해서 장식하는 찬양을 말한다. 


2. 내용

시편은 모세오경과 같이 크게 5권으로 구분하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편 1권  (1~41편) : 인간

 시편 제1권은 창세기 주제와 비슷하며, 그 핵심사상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축복(1:1~3)과 타락(14:1~3)그리고 구원(18:1~2)에 대한 찬양이 제1권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은 존재로 그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악을 경계하고 물리쳐야한다(1편). 하지만 인간이 교만으로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리에 있게 되었고(2편), 철저히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는 구제불능의 자리에 빠지게 된다(14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은 구원받고 참된 행복에 이르게 됨을 노래한다(22편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 23편 양떼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목자, 24편 양떼들에게 영광의 상을 주시는 대목자장).

시편 2권  (42~72편) : 이스라엘

 시편 제2권은 출애굽기 주제와 비슷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즉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배반하고(52:1~3) 하나님 아버지 품을 떠나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후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며 부르짖는다(42편, 49편, 70:1~5). 그러자 결국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구속된 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 끝나며(72:8), 그 영광을 노래한다.

시편3권  (73~89편) : 성소

 시편 제3권은 레위기 주제와 비슷하다. 즉 레위기의 주제가 성소이며, 죄 많은 백성들이 성소로 나아가는 길로 제사를 가르쳐 주고 있듯이, 이 부분에는 하나님의 권면이 성소와 관련하여 거의 매장마다 말씀되고 있으며, 성소가 황폐한 상태에서 다시 재건되는 것으로 마치는데, 이것은 시온에 대한 소망과 찬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84:1-6).

시편 4권  (90~106편) : 땅

 시편 제4권은 민수기 주제와 비슷하며, 땅에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춘다. 본권의 시작인 시편 90편은 모세가 지은 것으로서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땅은 슬픔의 장소이다. 하지만 다른 시편들은 땅을 슬픔의 장소로만 노래하지 않고 기쁨을 잉태하고 찬양을 하늘로 올려드리는 거룩한 백성들이 몸 붙여 살고 있는 정든 고향으로 노래하고 있다(100:1~2, 104:30~32). 무엇이 이러한 찬송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그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의 거처(90:1)와 그늘(91:1), 즉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시편 5권  (107~150편) : 말씀

 시편 제5권은 신명기와 그 주제가 비슷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춘다. 즉 이 부분의 모든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시편 119편은 ‘말씀’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이며 전체 176절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에 112절 단 한절을 제외하고는 각 절마다 '말씀'이라는 의미가 담긴 동의어들이 9개(율법 · 증거 · 판단 · 율례·말씀·법도·계명 · 약속·길)나 사용되고 있다. 또한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사모하며 올라갈 때 불렀던 찬송이다(122:1~4, 134:1~3).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삶속에서 그리고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송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찬송했음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한편 전체 시편 1~150편은 마지막 제150편을 송영으로 끝을 맺는데, 우리는 이 시에서 찬양의 모든 것을 보게 된다. 즉 찬양의 대상(하나님), 찬양의 장소(성소와 궁창에서), 찬양의 내용(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광대하심을 인해), 찬양의 방법(모든 악기와 춤추어), 찬양하는 자(호흡이 있는 자마다) 등을 분명히 알게 된다.

 



3. 적용

 하나님께서는 시편기자를 통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고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찬송하기 위해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사 43:21). 따라서 찬양에는 어떤 조건이 있어서는 안된다. 즉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상관없이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반응형

1. 배경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것은 비둘기처럼 화평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요나의 사명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왕하 14:25, 욘 1:1)로서 북쪽 이스라엘 근방에 있는 가드헤벨이라는 곳에 살았다. 그는 엘리사 이후에 등장해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에 예언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아모스와 호세아의 활동 직전으로서 이스라엘이 가장 부강하던 때로서 민족주의적 자부심이 대단히 높은 시기였는데, 이 때 이스라엘은 교만과 우월감에 빠져 이방인들을 멸시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잔인하기로 소문난 앗수르(그들은 정복한 도시에 해골의 피라밋을 쌓고, 포로들을 잡아다가 산 채로 껍질을 벗기거나 눈을 뽑고 갈비를 뜯어냈다)는 다소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주변 국가들의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잠재적 적대국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나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되기를 바랄뿐 구원받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를 쳐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잔인한 민족 앗수르도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 앞에서는 두려워하며 회개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앗수르왕 아슈르단 3세(주전 773~755년) 때에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백성들은 두 번의 전염병(주전 765, 759년)과 일식(주전 763년)을 경험하면서 요나가 전한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전대미문의 대대적인 회개를 했다.


2. 내용

① 반항하는 요나(1장), ② 회개하는 요나(2장), ③ 순종하는요나(3장), ④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요나(4장) 등과 같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  반항하는  요나

 당시 니느웨는 앗수르의 거대한 도시로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우상숭배와 전쟁의 살상 등으로 죄악이 극에 달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선지자로 부르시고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는 명령을 하신다(1:2). 니느웨 백성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함으로써 그들을 죄악으로부터 돌이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그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요나가 이스라엘의 원수국이요 잔인한 앗수르 제국이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다가 만일에 그들이 죄에서 돌이키면 필경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실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4:2). 이에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기 위해 갈멜산 남쪽에 있는 욥바 항구(港口)로 내려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다(1:3). 다시스는 스페인의 남쪽해변에 있는 항구 도시요 번성하는 도시였는데, 당시에 그곳은 세상의 끝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요나는 세상의 끝인 다시스로 도망가면 하나님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배를 타고 그곳으로 도망가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바다에 풍랑을 일으키자 요나의 죄는 발각되고(4~11절), 그는 죄의 대가로 바다에 던져진다(15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3일 밤낮을 보내게 된다(17절).

 

2장 : 회개하는 요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한다. 그는 자신을 구원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렸으며, 하나님께 서원을 갚겠다는 기도를 드린다(1~9절). 그러자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해 내게 하신다(10절).

 

3장  :  순종하는 요나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에게 하나님은 다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신다. 이번에 요나는 즉시 니느웨로 가서 40일 후면 그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선포한다(1~4절). 그러자 니느웨 백성과 왕은 물론 짐승에 이르기까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재앙을 거두신다(5~10절).

 

4장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요나 

 요나는 자신이 전한 메시지를 듣고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케 됨을 보고서 하나님께 불평하며 자신을 죽여달라고까지 간청한다(1~3절). 이에 하나님은 박 넝쿨(6절), 벌레(7절), 뜨거운 동풍(8절)을 실물 도구로 사용하셔서 요나가 박 넝쿨을 사랑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니느웨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심을 깨닫게 해 주신다(10~11절).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뿐 만 아니라 이방민족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어 구원을 베풀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3. 적용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 만방에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함으로써 세계 만민이 복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함으로 심판을 자초하지 말고(겔 33:8, 고전 9:16), 복음전도와 이방선교에 앞장 서는 자들이 되어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단 12:3).


반응형

1. 배경

 

 소아시아의 서쪽(지금의 터키 서부해안)에 위치한 에베소는 사도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소아시아의 수도가 될만큼 아주 중요한 도시였다. 그 이유는 당시에 에베소가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와 수리아의 안디옥과 더불어 소아시아의 주요 항구도시로서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에베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각종 이방문화와 그릇된 이방종교들이 밀려들어왔으며, 그 결과 아데미(다이아나) 여신을 숭배하는 등 온갖 죄악과 부패가 만연한 부패한 도시의 하나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사도바울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곳이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 잠깐 머물렀다가(행 18:19~21), 3차 전도여행 시 다시 와서 3년 동안 머물면서 개척한 교회가 바로 에베소 교회다(행 19:8~10, 20:31).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년간 목회한 이후에는 디모데가 머물렀고(딤전 1:3), 오네시모도 여기서 일하기도 했다(딤후 1:18). 특히 이곳은 사도 요한이 활동한 본거지이기도 하다(계 2:1~8).

 한편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됨에 따라 자신이 전에 설립해 놓은 교회들을 여러 해 동안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자신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인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늘 분열의 위험이 있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교회의 화평과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 본서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2. 내용

 사도 바울의 관심은 교회에 있었다. 즉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의 일치는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며, 교회는 어떻게 성장되어야 하는가? 교회를 위한 성도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이 에베소서가 추구하는 주된 관심사항이다. 특히 바울은 본서에서 어느 특정한 지역의 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교회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일 된 보편적 교회를 이야기함으로써 새로운 교회관을 제시해주고 있다. 교회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는 예수님 자신이 교회의 터전이시며(고전 3:11) 창설자이시고, 또한 소유자이시다(마 16:18).  또한 바울은"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연합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엡 1:22~23, 2:19~22, 3:1~6). 그래서 바울은 전반부(1~3장)에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구원받은 사람의 연합체,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론을 논하고, 후반부(4~6장)에서는 거룩한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성도들의 생활을 논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론 (엡 1~3장)

(1) 구원의 내용

 바울은 교회론을 말하기 전에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성도들의 구원과정과 그 내용을 말한다. 구원과정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즉 성부 하나님이 예정하시고(1:36), 성자 하나님은 구속하시고(1:7~12), 성령 하나님은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시는데(1:13~14), 사도바울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찬양한다. 그 다음 사도바울은 구원받은 자의 구체적 내용을 설명한다(2:1~10).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였으나(2:1~3) 지금은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으므로(2:4~10)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한몸(교회)을 이루게 되었다고 말한다.

 


엡2: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 것은 믿음과 구원의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언급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우리는 왜 선을 행하여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10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2) 교회의 정의

 교회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강조한다. 이 부분(2:11~3:21)은 기독교 교회론의 결정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 없이 한 몸이 되어 통일을 이룩하고 이 통일은 만물의 통일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2)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성도의 생활(엡 4~6장)

 전반부(1~3장)에서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물의 통일이라고 말한 바울은 후반부(4~6장)에서 교회의 일원이 된 성도의 실제생활을 가르친다.

 

(1) 성도의 교회생활에 대한 가르침 (4:1~16)

 영원한 교회인 천국에 거할 성도는 땅 위에서부터 교회생활을 잘해야 한다. 바울은 이 교회생활에서 교회의 일치를 강조한다. 즉 사도바울은 믿는 자에게 준 모든 은사와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며(4:11~12), 그리스도를 목표하여 성장하는 데 있다(4:15~16)고 강조한다.

(2) 개인생활에 대한 가르침 (4:17~5:21)

 교회의 공동생활은 개인의 신앙생활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교회생활을 통하여 개인의 신앙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의 신앙성장은 먼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데 달려있다(4:20). 버리지 않으면 새 것을 얻을 수 없고(마 19:29), 버린 자는 또한 진공상태로 있을 수 없는 것(마 12:43~45)이 신앙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어두움의 생활을 버리고 성령을 좇아 빛의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5:1~14).

(3)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에 대한 가르침 (5:22~6:9)

 바울은 특히 가정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부부간의 사랑이라고말한다(5:22~23). 다음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로 자식은 순종하고 부모는 주의 교양으로 양육할 것을 부탁한다(6:1~4). 그리고 주종관계는 '서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고 아끼라고 말한다(6:5~9). 

(4)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에 대한 가르침 (6:10~20)

 사도 바울은 성도가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영적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싸움의 대상인 사단을 잘 알아야 하고, 동시에 신앙의 무장을 잘 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면한다(6:13~18).

 

 



3. 적용

 

 오늘날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이 있다. 그러나 교인들 중에는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래서 크고 시설이 좋은 교회를 아름답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교회의 본질이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다. 즉 교회가 점점 세속화 되어 가고 기업화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면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여 사랑으로 하나되고 통일된 건강한 몸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각 지체인 성도들이 한 몸을 이룰 때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게 되고,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를 통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많은 문제들은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나누어지는 데서 발생한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모든 인류와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이 일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친히 자신의 피값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심으로, 성도들이 먼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온전한 몸을 이루어 가야 한다.


반응형

'03. 성경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Psalms) - 이해하기  (0) 2022.05.06
요나(Jonah) - 이해하기  (0) 2022.05.05
로마서(Romans) - 이해하기  (0) 2022.05.03
사도행전(Acts) - 이해하기  (0) 2022.05.03
에스더(Esther) - 이해하기  (0) 2022.04.30

+ Recent posts